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것, 채워지지 않은 부분에 더욱 이끌린다. 누구나 각자의 뚜렷한 강점이 있는 것처럼, 그만큼의 연약한 지점 또한 존재한다. 내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 사람에게는 큰 흥미나 호기심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이미 익숙한 감정과 경험이기에, 그와 관련되어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새로울 것이 덜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면에 탁월함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감탄과 존경심이 훨씬 더 쉽게 생긴다. 그런 사람을 마주했을 때는 자꾸만 그 비결을 묻고 싶어진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 그런 기질을 가진 삶은 어떤 감정일지, 더욱 깊이 알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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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Dual Hz, 텍스트로 듣는 자매의 라디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즌 1은 <우리가 좋아하는 어른들>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인터뷰의 5번째 주인공 '최원호 씨'를 만나볼 시간입니다.
*모든 인터뷰는 2회차로 나누어 발송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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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언니, 승원)가 결혼한 사람은 남편이지만, 자연스럽게 남편의 가족들도 내게 함께 왔다. 남편의 부모님인 시댁은 처음에는 그냥 잘 보이고 싶은, 어려운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형식적인 시어머니, 시아버지 관계가 아니라 진짜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으레 ‘50대들은 이렇지, 60대는 그렇지’라고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특히 시아버지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나의 고정관념을 깼다.
먼저, ‘배움’에 대해 열려 있다 못해 양팔을 벌려 환영하는 자세가 그랬다. 나는 뼛속까지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틱톡보다는 네이버 뉴스로 세상 돌아가는 걸 파악하는데, 아버님은 매일 틱톡으로 해외 정세를 살펴보신다. 나는 모든 계획과 업무를 손으로 다이어리에 정리하고, 아버님은 노션에 날짜 별로 깔끔하게 폴더를 만들어 기록하신다. 내가 혼자 머리를 싸매며 고민할 때, 아버님은 챗GPT, Gemini와 함께 보고서를 작성하신다. 신기술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직접 사용하는 것에 유독 약한 나라서 그런지 아버님의 그런 일상은 경이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내 주변의 2-30대들도 저렇게까지 신기술이나 플랫폼을 본인 필요에 맞춰 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자기 관리’다. 나는 커리어 등 다른 부분에서는 스스로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밀지만, 건강 관리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편이다. 그러다보니 남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도 나의 건강을 염려하곤 한다. 조금씩 더 건강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 중인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버님의 루틴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매일 엘리베이터보단 계단을, 앉아서 일하기보단 서서 일하기를 택하고 자전거, 탁구 등 운동도 매일같이 꾸준히 하신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평생 했을 운동량을 아버님은 한달 안에 해치우는 듯 하다.
본인 입으로 말씀하셨듯 아버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성실’과 ‘배움’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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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이야기 1
Q. 원호 님, 안녕하세요. 먼저, 이전 직업들과 현재 하고 계신 일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형 건설회사 주택사업본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공동주택 현장에서 일했고, 유학을 다녀온 이후로는 해외 건축 분야로 진출하여 싱가포르 콘도미니엄, 고급 아파트 프로젝트를 담당했습니다. 이후 이집트에서 포시즌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총 33년간 건설업에 몸담았습니다.
임금피크 1년 차를 맞이했을 때, 회사에서 발생한 한 사건을 계기로 사고 수습보다 징계를 우선시하는 회사의 대응에 크게 실망했고, 58세에 퇴직을 결심했습니다. 저는 회사를 다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발주를 받는 ‘을’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회사 말년에는 소위 말하는 ‘갑’의 위치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퇴직한 다른 동료들의 경우에는 설계사무소나 감리쪽 일을 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더 ‘을’의 위치라 고민되기도 하더라고요.
현재는 2년 반 정도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매우 즐거워요. 예전엔 착공 이후의 일을 주로 맡았다면, 지금은 착공 훨씬 이전, 서울시의 첫 인허가 단계부터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발주자, 사장님의 니즈를 파악해 4대문 안에 연면적 10만㎡가 넘는 대형 프라이빗 오피스와 공연장이 들어가는 특별한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신사옥건립추진단장으로서 PM의 역할을 하고 있죠.
Q. 현재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 그리고 건축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982년 대학 입학 당시는 해외 건설이 한창 붐이었다가 약간 주춤하던 시기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해 공대에 진학했고 1학년 때는 학점이 좋지 않았지만, 취업을 위해 공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형님이 건축 일을 하고 있어서 집에 관련 책이 많았고, 형을 따라 이것저것 고치는 일도 재미있었습니다. 주변에 건축을 하는 사람이 많아 건축이라는 직업이 자연스럽게, 어렵지 않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Q. 회사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신입사원 시절 봉천 재개발 현장에 배치되었을 때, 건설현장의 거친 환경에 당황했습니다. 과를 잘못 선택한 게 아닌가 고민도 했습니다. 현장엔 항상 위험한 상황이 많았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목을 다쳐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장인어른이 장위동에서 봉천동 병원까지 오셔서 짓던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현장에 복귀하지 않을 수 없어 일주일 만에 다시 복귀해 지원업무를 맡았고,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오래 남아있습니다.
신입사원 때 받은 다이어리에 공정별로 색인표를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배운 내용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평소 기억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기록에 집중했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게 생기면 항상 노트를 들춰보면서 답을 해줬어요. 지금은 노트 대신 20년 넘게 엑셀로 업무일지를 매일 적고 있습니다. 이집트 현장부터는 노션과 엑셀을 같이 씁니다. 노션에 제가 일한 역사가 일기장처럼 다 담겨있는 거죠. 또 누가 ‘그때 그거 언제였지?’라고 물으면 검색 한 번에 모든 히스토리를 찾아 낼 수 있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다양한 돌발 상황들이 발생하는데 이런 때 기록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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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 씨는 별 거 아닌 일이라고 말하지만, 어찌나 노션(notion)이 의도한 대로 프로그램을 잘 사용했던지 어느 날 갑자기 노션 측으로부터 홍보대사를 해주지 않겠냐는 이메일 제안도 받았다. 본인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해당 제안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지만, 최원호 씨와 동일하게 노션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이 오히려 흥분에 휩싸였다는 후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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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이야기 2
Q. 해외 연수나 유학을 통해 원호 님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가장 처음 갔던 해외 연수는 일본인데요. 3명밖에 되지 않는 연수 인원에 당시 사원급이었던 제가 포함이 됐습니다. 아마 현대건설에서 1년에 한 번 보는 영어 시험에서 3년 동안 연달아 1등을 하자 ‘영어 잘하니까 일본어도 잘하겠지’하는 생각으로 절 뽑았던 것 같아요.(웃음) 일본 현대건설-카지마 건설 교류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3개월간 일본어를 배웠고, 6개월간 일본에서 연수했습니다. 이때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꾸준히 일본어 공부를 했고 JLPT 2급도 취득했어요. 제가 다녀온 이후로 일본 해외 연수 사업이 종료되었는데, 저는 막차를 잘 타서 일본에 다녀온 거죠.
이후 현대건설에서 보내주는 해외 유학을 운 좋게 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 영어권 대학원 입학을 위한 시험)와 TOEFL을 준비했고,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패밀리 기숙사 77A가 저희 숙소 주소였는데, 시설이 참 깔끔하고 자연도 가까이에 있어서 지내는 동안 정말 좋았어요. 그렇지만 IMF 시기여서 특히 가계가 어려울 때라 석사과정 중에 스탠퍼드 영선반(교내 기숙사 등을 수리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엔지니어링 학위도 추가로 취득하면서 시간을 밀도있게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미국 생활은 제게도 개인적으로 큰 배움이었지만 아들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공부하고 새로운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Q. 아, 가족들도 함께 외국에 살았던 거군요? 아이들이 해외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거나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일단 이집트의 경우에는 언어가 안 통하니 기본적인 장벽이 있었고,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도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집트인들이 문화적으로 ‘모른다’, ‘안된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실제 가능하지 않은 일도 가능하다고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게 진짜고 가짜인지 감별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인들과 한국인들을 굳이 비교하면, 일을 굉장히 야무지거나 빠릿빠릿하게 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답답한 면도 있었습니다.
Q. 그래도 해외 경험이 많으시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는 잘 하시겠어요!
영어는 카투사 복무 시절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대 후 토익 870점을 받았는데, 이때 다들 공대생이 어떻게 그렇게 잘 봤냐며 신기해 하더라고요. 한양대 복학 후엔 영어 경진대회에서 2등을 하고 경품으로 사전을 받았던 기억도 납니다.
Q. 전자사전인가요?
아니요, 두꺼운 종이 사전이요.(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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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또 잘할 수 있었나요? 비법 좀 알려주세요.
중학교 때 학교를 다녀오면 그 시간 대에 하는 방송이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밖에 없어서 주구장창 봤던 기억이 나네요. 이 외에도 미군방송, AFKN(American Forces Korea Network, 영어 방송 네트워크)를 계속 봤고, 고등학교 때 시사영어, 대학 때 헤럴드 신문을 꾸준히 읽었습니다. 카투사 시절 미군부대 도서관에서 책도 많이 읽었고, 영화도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100편 이상 봤습니다. 당시에 미군부대 신병은 영화 상영 5분이 지나면 무료로 들어가서 볼 수 있었거든요.
읽는 것과 듣는 것을 꾸준히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좋은 생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리더스 다이제스트도 매달 빌려서 모두 읽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세상의 모든 뉴스들을 볼 수 있는 틱톡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어렵게 크긴 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영어를 많이 접했고 영어로 제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제복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ROTC를 가려고 했었는데 학점이 낮아 ROTC는 가지 못했어요. 당시에 ROTC에 붙고 육군 장교가 되었다면 정말 또 다른 세상을 살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ROTC의 최원호, 카투사의 최원호는 전혀 다른 인생이었을 거에요.
Q. 이렇게 들으니 정말 성실함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성실함이 제 트레이드 마크라고 생각합니다!
Q. 이집트 현장에서도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이집트에서의 일은 어땠나요?
이집트 현장에서의 5년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소장이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 세 번째 소장은 일은 잘했지만 독종 스타일이라 다른 사람들이 좀 꺼려하는 부분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그 분에게 “너 참 뚝심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새로운 환경, 발주처, 땅, 관계자들에게 겁먹지 않고 적응했습니다.
Q. 원호 님 나이 대에 다른 직장으로의 이직 준비, 특히 직접 이직 준비를 하셨으니 더욱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코리안리’라는 회사의 신사옥 프로젝트 PM으로 이직할 수 있으셨나요?
이전 회사에서 나와야 하나 고민이 많은 타이밍에 한 채용 플랫폼에 제 이력서를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헤드헌터를 통해서 코리안리의 PM 직무를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런데 이후에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이 없어서 다시 연락을 했더니, 이번 기회는 저랑 잘 맞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아들들이 그런 공고는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들어가보라고 했는데,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홈페이지에 해당 공고가 떴습니다. 그래서 헤드헌터를 끼지 않고 혼자 지원해서 면접 단계까지 갔죠. TMI이지만 나중에 최종 면접에서 저와 마지막까지 남았던 1명의 지원자가 처음 그 헤드헌터가 밀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스스로 해냈다는 마음에 뿌듯하기도 했고, 동시에 그 헤드헌터 덕분에 해당 직무를 알게 되어서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던 것 같아요. 맡았던 프로젝트들을 되짚어 보면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이직할 회사에서 맡게 될 역할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공부했습니다. 면접을 볼 때는 1~2시간 일찍 면접 장소에 가서 주차장부터 건물을 꼼꼼하게 살펴볼 정도로 성실하게 준비했어요. 몇 년 전부터 대부분의 동료들은 이미 은퇴를 한 상황인데, 저는 현업에서, 게다가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Q. 현재의 목표와 함께,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현재는 맡고 있는 코리안리 신사옥 프로젝트를 몸 건강히 잘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후에는 고문이나 자문으로서 사옥/빌딩 건설에 어드바이스를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수십년간 쌓아온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봉사활동, 예를 들어 아산병원에서 외국인 영어 통역과 안내를 하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런 일도 해보고 싶고요. 꾸준히 일본어와 영어를 계속 배우며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최소한 70세까지는 일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Q. 원호 님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이란?
일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급여나 복지도 중요하고,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도 중요하다고 봐요.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남의 시선을 무시하며 살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에 다니면 좋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또 이제 100세 시대인만큼 어느 정도는 롱런할 수 있는 직업이 이상적이겠죠. 현장에서 시멘트 가루를 맡으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한 이유도 오랫동안 일하기 위해서였던 것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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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다음주 수요일, 제 10화로 이어집니다. 우리 서로의 주파수가 맞길 진심으로 바라며, 다음 방송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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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사연 코너📻
Q. 5~8회차 뉴스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다면, 자유롭게 들려주세요.
<망뭉> : 어른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들으며 지금 내 상황에 대입해서 생각해보니, 이야기들이 잘 와닿는것 같아요! 모두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새삼 신기합니다.
➡️ 세대가 달라도 마음에 남는 순간들은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저희도 그 시절을 함께 지나고 있는 중이란 걸, 조금씩 실감하게 됩니다 :)
<진토끼> : 독자가 뉴스레터 앞부분에서 이 사람이 누군지? 왜 읽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는 후킹문구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한 질문에 답변이 좀 긴 편이라 한번에 다 읽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중간에 하이라이트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거나, 질문-답변이 좀 더 짧은 호흡으로 반복되는건 어떨까요..?
롤모델이나 존경하는 인물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진 세상(?)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어른들’이라는 정서적 포지셔닝이 매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성 뉴스레터에서 벗어나 감성 뉴스레터로 한탕해봐요.
➡️ 공감하던 부분이기도 하고, 꼭 필요한 피드백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즌 2를 준비하면서 말씀 주신 부분들을 반영해 더 가독성 좋고 설득되는 뉴스레터를 만들어볼게요.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저희도 꼭 한탕해보고 싶네요..😏)
Q. 요즘의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진토끼 : 매일매일... 회사 쇼핑....
➡️ 매일 매일 정해진 자리에서 나의 몫을 해내면서도,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한다는 점이 정말 멋져요. 바쁘고 지칠 수 있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뉴스레터와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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