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이야기
김영진 씨는 1997년도 여름, 최사장(사회에서 만난 친구이자 믿음직스러운 동료)과 *제대혈 은행인 ‘라이프코드’를 창업했다. 당해 11월,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경영했다. 점점 라이프코드의 규모가 커졌고, 자회사인 LSK 임상시험 대행기관도 함께 운영했다. 2002년 라이프코드는 주식 시작에 상장했으나, 이후 시장 내 할인 경쟁이 심화되고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2009년, 서울의과학연구소(SCL)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아기 출산 시 채취된 탯줄 혈액에서 세포를 분리, 가공하여 보관하는 역할을 하는 탯줄은행
SCL의 원장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진단검사 분야를 본격적으로 맡았다. 당시 이태원에 검사센터가 있었는데,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현재의 수원 쪽으로 이동했다. SCL에서 일한 지 어느새 17년차가 되었다. 원장 겸 연구소장을 맡다가, **인체유래물 은행장을 거쳐 현재는 아카데미 부서로 이동해 부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 혈액이나 조직 검사를 진행하는 의학 분야
*인체유래물 또는 유전정보와 그에 관련된 임상정보 등을 수집·보존하여 이를 질환 연구, 신약 개발 등에 이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하는 기관. 인체유래물이란 인체로부터 수집·채취한 조직, 세포, 체액 등 인체 구성물 또는 이들로부터 분리된 혈청, 염색체, DNA 등을 말함
Q. 안녕하세요, 영진님. 현재 아카데미 부서에서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회사 내외부 교육 자료 및 질환, 검사와 관련한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해외에서 이슈가 되는 기사들을 큐레이션하여 회사 내부 및 외부 전문의들에게 공유하는 뉴스 클리핑 업무도 수행하고 있어요. 서울이나 지방에서 열리는 의학 관련 세미나에 자주 참석해 최신 정보를 습득하기도 합니다.
Q. 현재 하시는 일을 선택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연스럽게 의대를 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길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의대 진학 후 선택할 수 있는 전공과는 많았지만, 85년 당시에는 성적이 좋아야 원하는 과를 지원할 수 있었고 게다가 모집 인원이 매우 적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의대 인턴을 지원했지요. 하지만 지원자가 많아 아쉽게 기회를 얻지 못했고, 바로 군 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중보건의(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중, 공보의는 의사가 없는 오지의 보건소에서 지역 주민을 진료하는 보충역)로 의료 취약 지역에 근무해야 해서 강원도 정선, 횡성에서 각각 1, 2년씩 근무를 했습니다.
이후 다시 인턴 시험을 보고 원주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 근무를 마쳤고, 레지던트(전공의 과정)에 지원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과를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진단검사의학과라는 이름이지만 당시에는 임상병리학과의 교수에게서 영입 제안이 와서 해당 과를 선택했어요. 교수 자리도 보장해준다고 했었죠. 그런데 제가 과정을 마칠 때쯤 외부에서 온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해 결국 교수 자리는 무산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서 개업할까 고민하던 중, 경험을 쌓으려고 *KMI 부천제일병원에 취직해서 3~4년쯤 일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결혼도 했고요!
*건강검진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건강관리 전문 기관
Q. 굉장히 오랜 회사 생활을 하셨는데요. 회사 생활 하면서 가장 좋은 기억은 무엇인가요?
‘제대혈 은행’이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미국 애리조나대학에서 배워와 국내에 정착시키고, 성공시키고, 코스닥 상장을 시켰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또 하나는 비교적 최근인데요. 인체 유래물 은행(바이오뱅크)의 표준업무지침을 모두 직접 영문으로 작성해, 아시아 최초로 ISO 20387 국제인증을 획득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어요.
Q. 재작년 LA의 ADLM 국제학술대회에서 최우수 초록상도 수상하셨잖아요! 그 얘기도 간단하게 해주세요.
코로나 진단키트를 설계하는 데 꼭 필요한 특정한 변이가 있는데, 이에 대한 초록을 작성했습니다. 영어로 하면 ‘Monitoring SARS-Cov-2 Subvariants for Evaluation of the Diagnostic Kit’s Annealing Site using Nanopore Sequencing’이 주제였어요. 이에 대한 포스터를 LA 학회에 걸어 발표하고,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 대답하고 저도 다른 사람들의 논문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하는 아빠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 60대라는 나이에 해외에서 상을 받고 또 그것에 대해서 영어로 설명하는 아빠의 모습이 새삼 새롭고도 자랑스러웠다.)
Q. 앞으로 커리어적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까요?
임상시험 분야에서 다시 일을 해보고 싶고, 교수처럼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들과 같이 연구하고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서로 새로운 걸 배웠으면 좋겠어요.
Q. 여러 분야 중에서도 임상시험 분야에 특별히 끌리신 이유가 있을까요?
임상시험을 하려면 이에 대한 깊은 탐구가 필요한데요. 계속해서 새롭게 공부할 범위가 있다는 게 저에게는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약 개발을 하는 데 기여하고 식약처/FDA 등 기관의 승인을 받으면, 전 세계가 공인하는 약이 되면서 환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죠.
Q. 영진님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이란 뭘까요?
먼저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일을 하면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확실히 있는 영역인지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진짜 성장을 이루면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